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처용무(處容舞)
등재 2009년
영문명 Cheoyongmu
요약
처용무(處容舞)는 궁중무용의 하나로, 현대에는 무대에서 공연되지만 원래는 궁중 연회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평안을 기원하거나 음력 섣달그믐날 귀신을 쫓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복을 기원하기 위해 추어졌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자 사람의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매개하는 역신으로부터 인간의 아내를 구했다는 한국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중앙 등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백, 청, 흑, 적, 황의 오색 의상을 입은 5명의 남자들이 춤을 추는 춤이다.
무용수들은 팥색에 하얀 이빨을 가진 신인(神人)의 가면을 쓰고 납구슬 목걸이에 주석 귀걸이를 하고 검은 사모(紗帽)를 쓰고 사모 위에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를 담은 모란 두 개와 복숭아 열매 일곱 개를 꽂는다. 다양한 형식과 박자의 반주 음악, 가끔씩 삽입되는 다양한 서정적인 노래 등을 통해 처용무는 호쾌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처용의 모습을 대문에 새기면 역신과 악귀를 쫓아낼 수 있다는 민간신앙을 포함하여 처용을 둘러싼 광범위한 민간신앙의 일부를 구성하는 한편, 처용무는 특히 오행설(五行說)로 대표되는 유교 철학을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처용탈의 제작 과정도 전통 장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지역 정보
궁중무용인 처용무는 예술 공연을 위해 마련된 무대에서 공연되었기 때문에 특정 지역이나 지리적 연관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리적 범위를 한정한다면 고궁이 있는 한국의 서울(옛 이름은 '한양')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에서 다섯 명의 무용수가 추는 궁중무용을 말한다. 그래서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1년 1월 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는 남성 무용수들이 추는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춤으로, 우리나라 궁중무용으로는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통일신라 말기(기원전 57년~기원후 935년) 헌강왕(憲康王)이 행차해 한반도 남동쪽, 울산시 인근 개운포(개운포, 지금의 황성동 세죽마을)에 도착했다. 왕이 환궁을 준비할 때 짙은 운무가 낀 하늘을 보고 의아해하며 좌우에 그 이유를 묻자 일관(日官)이 "이것은 동해의 용이 부는 재앙이니 당연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왕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게 하자 먹구름이 걷히고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동해 위로 날아오르는데, 그중 '처용'이라는 이름의 한 아들이 헌강왕을 따라 수도 경주에 와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관직을 얻어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처용이 집에 돌아왔을 때 역신이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나타나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동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쫓고 상서로운 기운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 후기(918년~1392년)까지 처용무는 무용수 1명이 추었으나, 조선 세종(재위 1418년~1450년)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무용수 5명이 추게 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따르면, 음력 섣달그믐날 역신과 잡귀를 쫓는 나례(儺禮) 의식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처용무를 추었다고 한다.
5명의 춤꾼은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색을 상징하는 흰색, 파란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처용무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라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장엄하고 활기찬 춤사위에서 활기차고 호쾌한 기운을 엿볼 수 있다.
처용무는 '수제천(壽齊天,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의 음악에 맞춰 왕을 향해 나아가고, '신라성대소성대(新羅盛代昭盛代, '밝고 번영했던 시대, 신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처용가'의 첫 구절을 '언락(言樂)'이라는 서정적인 곡에 맞춰 부르면서 시작된다. 시작된다. 이후 무용수들은 왕을 향해 인사를 하고 향당교주(鄕唐交奏, 향악과 당악을 번갈아 가며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세영산(細靈山)의 느린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은 사각형을 이루며 산작화무(散作花舞, '꽃 모양으로 흩어진다'는 뜻)를 추고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십자형으로 대열이 바뀌면 음악도 삼현육각(세 개의 현악기로 연주하는 6/4박자 느린 음악)으로 바뀐다. 수양수무(垂揚手舞, 팔을 들고 흔드는 춤)와 무릎디딤(무릎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춤)을 마친 후, 5명의 무용수들은 대열을 원형으로 바꾸어 왼쪽으로 돌아선다.
다시 한 줄로 서서 대열을 바꾼 후, 무용수들은 '산하천리국(山河千里國)'으로 시작하는 '처용가(処龍歌)'를 다시 한 번 가곡 우편(羽編)의 곡에 맞춰 부른 후, 송구여지곡(頌九如之曲, 도드리의 일종)에 맞춰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잎과 흐르는 물')를 춤을 추고 무대에서 퇴장한다. /처용탈은 팥색 피부에 하얀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납으로 만든 구슬이 달린 주석 귀걸이를 하고 있다. 검은 사모에는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아 장식한다. 팥색과 복숭아 열매는 벽사(辟邪, 사악한 기운을 물리침)를, 흰 모란은 진경(進慶, 기쁜 일로 나아감)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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